규제 완화에도 미분양 7만가구…10년만에 최대규모
군산 230가구 모집에 6명 청약
부안선 청약 신청 '0명'도
전북 미분양 62% 급증 최악
"공사비 늘었는데 분양도 안돼"
지방 중소건설사 한계 호소에
원희룡 "자구노력 선행돼야"
◆ 경고음 커진 미분양 ◆
'평(3.3㎡)당 900만원대에 원금 보장 실시.'
28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주택가의 한 대로변에는 전화번호와 함께 A분양단지에 대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분양가 원금 보장'이란 입주 시점에 시세가 분양가 이하로 떨어졌을 때 계약자에게 그 차액만큼 환불해주겠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미분양이 급증하자 분양업체들이 입주자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도입했던 파격적인 분양제도다.
당초 A단지는 지난해 12월 군산 공공택지 신역세권의 마지막 단지라고 강조하며 야심 차게 분양에 나섰다. 분양 결과는 참담했다. 특별공급 230가구에 단 6명만 신청했고, 잔여 물량이 넘어온 일반공급(563가구)에도 115개의 청약통장만 접수됐다. 대량 미분양이 예고되자 업체는 지난달부터 원금 보장을 내세워 선착순 분양에 들어갔다.
회사 분양 관계자는 "대출 이자비용에 확장비까지 분양가에 합산한 금액이 입주 시점 시세보다 높으면 그 차액을 다 돌려주기로 했다"며 "향후 각종 옵션을 제공할 예정이고, 기존에 분양받은 이들에게도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7만5359가구다. 이미 작년부터 미분양이 급증한 대구 외에도 강원·충북·전북 등에서 한 달 만에 미분양 물량이 30% 넘게 증가했다.
특히 A단지가 위치한 전북은 한 달 새 미분양 주택이 2520가구에서 4086가구로 62.1%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에 급증한 분양 물량이 소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 지역에는 7~11월 5개월 사이에 연간 분양 물량의 68%인 6405가구가 집중됐다. 시장 침체기가 본격화된 시점에 분양된 물량들의 결과는 뻔했다.
나 홀로 아파트인 부안 줄포 B단지는 일반공급 64가구 모집에 단 한 명도 청약을 신청하지 않았다. 민간참여형 공공분양 주택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익산 부송 C단지도 727가구 일반공급에 133명만 신청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전북에서 공급된 아파트 10개 단지 중 청약 경쟁률이 1대1을 넘은 곳은 단 세 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더샵 군산프리미엘(420가구)은 2.2대1, 익산 중흥S-클래스 퍼스트파크(734가구)는 1.89대1로 겨우 미달을 면했다. 공급과잉과 시장 침체가 맞물려 '미분양 무덤'이 된 대구의 뒤를 밟는 모양새다.
1·3 규제 완화 대책에도 미분양이 급증하자 주택업계는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해소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중견 건설업체들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보증 개선, 미분양 주택 취득자에 대한 취득세 50% 감면, 양도세 한시적 감면, 주택 수 미포함 특례 적용 등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현 상황에 대해 직접 개입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이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미분양 주택 할인 분양 등 사업자들의 자구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해소할 만한 수준이라 정부 개입에 앞서 건설사들의 자구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24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준공 후 미분양 역시 아직 장기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라 개입할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28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건설업체들의 '선(先) 자구책'을 강조하면서 "'소비자들이 이 정도 가격이면 살 수 있겠다'는 것을 사업자들이 판단해서 (할인 분양 등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재와 같이 침체된 시장에서 건설업체들이 할인 분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도시연구실장은 "공사비와 금융비용 인상 등으로 기존에 설계된 수익 구조가 이미 악화된 대다수 사업들에서 개발 주체가 임의로 분양 가격을 조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정부가 작년 말부터 추진해온 규제 완화 조치만으로는 분양률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공공분양 50만가구 공급 계획에 따른 공공분양 주택 신규 개발 비용에 비해 미분양 주택 매입은 오히려 정부의 재정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가 미분양 주택 매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재는 아직 정부가 개입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미분양 주택이 8만가구를 넘어서면 상대적으로 사태가 더 심각한 지방만이라도 미분양 주택 매수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 혜택을 한시적으로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 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다 보니 새로 주택을 공급하려는 움직임도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지난 1월 기준 전국 아파트 분양 실적은 단 1852가구에 불과했다. 1년 전인 지난해 1월 1만9847가구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고, 5·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8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서울은 전년 동월 대비 93.1% 급감한 단 96가구에 불과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작년 말부터 이어진 착공·분양 물량 감소는 2~3년 후 입주 물량 감소, 즉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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