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급락에 … 매매가와 격차 더 확대
서울 평당 격차 2159만원 달해
84㎡ 기준 7억원 이상 차이
2000년 이후 최대폭 벌어져
서울 전세 5주째 1%대 하락
2000년 이후 최대폭 벌어져
서울 전세 5주째 1%대 하락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 급락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2020년 이후로 가장 크게 벌어졌다.
사진은 노원구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4년 전 결혼을 준비하면서 "지금 어떻게든 살 집을 마련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민 끝에 전세를 택한 A씨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매매와 전세 간 가격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A씨는 "주위 아파트 가격은 하락했다고 해도 여전히 비싸다"며 "주위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걸 볼 때마다 '내 집 마련'은커녕 보증금 걱정만 커진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전세 가격 하락률이 매매 가격 하락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세살이 후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 가격 격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3.3㎡)당 매매 및 전세 가격은 각각 4235만원, 2076만원으로 조사됐다. 매매·전세 가격 간 격차는 2159만원으로 부동산R114 시세 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평당 매매·전세 가격 간 격차는 2015년 496만원에서 2016년 580만원으로 상승한 이후 7년간 지속적으로 올랐다. 2018년에는 1310만원으로 격차가 1000만원 이상 벌어진 뒤 5년 연속 1000만원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세살이 후 내 집 마련'은 신혼부부들이 많이 택하는 내 집 마련 방식인데, 격차가 벌어지면서 신혼부부들의 부담만 커지는 셈이다.
부동산R114는 "작년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매매 대비 전세 가격 격차(전용 84㎡ 기준)는 평균 7억원 수준으로 벌어졌다"며 "서울 아파트의 전세 세입자가 매수 전환을 할 때는 상당한 자금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서 아파트 전세 가격 하락폭이 매매가격 하락폭보다 크다는 점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9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1.05% 하락했다. 전주 하락폭 1.15% 대비 0.10%포인트 감소했지만 지난해 12월 둘째주 이후 5주 연속 1%가 넘는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조사에서 수도권 아파트 전세 가격 하락률은 1.05%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우 지난해 12월 첫주 이후 6주 연속 1% 넘게 전세 가격이 빠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매물 적체 장기화에 따른 임차인 우위 시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호가의 하락폭이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추세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매매 가격은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세보다는 낙폭이 덜한 편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45% 하락하며 전주 하락률 0.67% 대비 0.22%포인트 감소했다. 수도권 역시 이번 조사에서 0.64% 하락률을 보이며 전주(-0.81%) 대비 0.17%포인트 축소됐다.
부동산R114는 "매매와 전세 가격 격차가 줄어들면 자금 부담이 적어 거래가 용이해지지만 지금은 격차가 벌어지고, 집값 하락 전망이 우세해 전세입자들의 매수 전환 동력이 약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전방위적 규제 완화에 나섰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가 커 매수심리가 회복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라고 했다.
전세 매물이 계속 증가하는 점도 전세 가격 약세 전망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거래 분석앱 아실에 따르면 1년 전에 비해 수도권 전세 매물은 두 배씩 증가하는 등 매물이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다. 인천은 6750건에서 1만5373건으로, 경기도는 2만9000여 건에서 6만7000여 건으로 125% 늘었다. 서울은 3만건에서 5만4000건으로 늘었다.
전세가가 떨어지는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전국에서 '역전세'가 나타나는 가운데 올해 역전세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법 계약갱신청구권과 저금리로 인해 전세가격이 폭등한 2021년 전세계약을 체결한 곳들이 올해 2년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전세가격지수에 따르면 서울 기준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초 98이었지만 계속 상승해 2021년 말에는 103까지 올랐다. 이 지수는 지난해 6월까지 103 수준을 이어가다 하반기부터 빠지기 시작해 올해 초 92.3(1월 2일 기준)까지 내려왔다.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2021년 전세대란 때 최고가로 체결된 곳들이 많다. 지금처럼 전세가 안 빠지고 계속 쌓여만 가면 올해 하반기부터 만기인 곳들의 보증금 반환문제가 슬슬 시작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매경 이선희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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